지방 소도시 여행

정선 5일장 구석구석 탐방기

지방 소도시 여행 2025. 10. 29. 00:30

정선 5일장 구석구석 탐방기 로컬의 숨결을 느끼는 진짜 여행

강원도 정선은 아름다운 산세와 함께 전통 시장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정선 5일장’으로 유명하다. 매달 2일과 7일이 포함되는 날짜에 열리는 이 장터는 정선군민의 삶이 녹아 있는 현장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장터의 북적임과 먹거리에 반해 이곳을 찾지만, 그중에서도 진짜 매력은 장터의 ‘구석구석’, 관광객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공간 속에 숨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정선 5일장 구석구석 탐방기’를 주제로, 관광객들이 잘 모르는 소박하지만 인상 깊은 상점들을 네 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각 상점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정선이라는 지역의 전통, 삶, 인심이 깃든 장소다. 진짜 정선을 알고 싶다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을 조금 벗어나야 한다. 바로 그곳에 진짜 이야기가 있다.

정선 5일장 구석구석 탐방기

 


정선 옹기상점, 토속의 온기가 배어 있는 그릇가게

정선 5일장의 한켠, 번화한 먹거리 골목에서 약간 벗어난 골목에 자리한 '옹기상점'은 단순히 그릇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이곳은 무려 30년 이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역 토속문화의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옹기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데, 그 중 일부는 주인 할아버지가 직접 구워 만든 것도 있다. 특히 옛 방식 그대로 구운 옹기 뚝배기, 장독대, 장아찌 용기는 정선 인근 주민들에게 꾸준히 인기 있는 품목이다.

관광객들은 흔히 지나치기 쉽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선 토박이들이다. “이건 장 담글 때 쓰는 거고, 이건 고추장 항아리야”라며 물건마다 용도와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주인의 손길 속에는 정선의 옛날 방식과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선 여행의 기념품으로 흔한 자석이나 간식보다, 이렇게 손맛과 흙냄새가 담긴 옹기를 하나 챙기는 건 어떨까. 부엌 한켠에 놓아두기만 해도 정선의 온기가 오래 남을 것이다.


약초방앗간 골목, 정선 산골 약초의 진짜 향기를 만나다

정선은 예로부터 산이 많은 지형 덕분에 약초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장터 중심가에서 판매되는 말린 약초를 구입하는 데 그친다. 반면, 장터 구석에 자리한 ‘약초방앗간 골목’은 정선 토박이들 사이에서도 ‘알 만한 사람만 아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소규모 약초상점과 직접 약초기름을 짜주는 방앗간이 몇 군데 모여 있다. 특히 참깨와 들깨를 직접 볶아 바로 짜주는 들기름과 참기름은 향부터 다르다. 기름을 짜는 기계 옆에서 퍼지는 고소한 냄새만으로도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 골목에서는 구기자, 황기, 천궁, 산삼줄기 같은 고급 약재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약초상인은 대개 정선 인근 산골에서 직접 채취한 것을 판매하며, 각 약초의 효능과 달이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여기서 만난 70대 약초 상인은 “몸에 좋은 건 비싸지 않아도 돼, 손으로 캐고 손으로 씻은 게 진짜지”라며 웃었다. 그 한마디에 이곳의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정선의 산이 키워낸 건강한 기운을 담고 싶다면, 이 골목을 반드시 들러보자.


정선 재봉틀 가게, 시간이 멈춘 바느질의 미학

정선 5일장에는 한참 걸어야 만날 수 있는 ‘재봉틀 가게’가 있다. 간판도 없이 천막과 낡은 간이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이 공간은, 몇십 년째 같은 자리에서 옷을 수선하고, 조끼나 바지 등을 직접 만드는 할머니가 운영한다.

이 가게는 외지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선 주민들에게는 ‘급할 때 찾는 든든한 곳’으로 통한다. “이 바지 허리 좀 줄여줘요” 하면, 단 몇 분 만에 척척 바느질을 마치고 손에 쥐어준다. 바느질 속도도 빠르지만, 그 솜씨 또한 옛날 방식 그대로 정갈하다.

가끔은 할머니가 직접 만든 누빔 조끼나 손바느질 스카프가 진열돼 있는데, 그런 물건은 사실상 ‘1점 한정’이다. 천은 시장 근처 원단가게에서 사온 것들을 쓰고, 색감도 화려하진 않지만 정선의 자연에서 따온 듯한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다.

이 가게를 찾은 어떤 관광객은 할머니의 조끼를 입고 돌아가 “어디서 샀냐”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 거창하지 않지만, 사람의 손으로 천천히 만들어진 물건이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크다.


막걸리 주전자가 걸린 노포 주점, 정선의 밤을 닮은 맛

정선 5일장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사람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지만, 시장 끝자락에 있는 한 노포 주점은 오히려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4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지 어르신들의 사랑방 같은 술집이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주택처럼 보이지만, 간판 없는 주전자 하나가 입구에 걸려 있다면, 바로 그곳이 정선 막걸리 주점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정선에서 직접 빚은 막걸리와 감자전, 그리고 메밀부침이다.

막걸리는 일반적으로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걸쭉하고, 은은한 단맛과 함께 톡 쏘는 발효 향이 살아 있다. 무엇보다 막걸리를 시키면 꼭 동동 뜨는 찹쌀알과 함께 주전자로 나오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감자전은 감자와 전분만으로 구운 전통 방식 그대로이며, 살짝 탄 부분이 바삭하면서도 안쪽은 촉촉한 맛을 자랑한다. 주점 내부에는 TV도 없고, BGM도 없지만,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나직한 대화가 그 자리를 채운다.

관광객이 우연히 들어왔다가 몇 시간이고 머무르게 되는 이 주점은, 술이 아닌 사람의 온기로 가득하다. 정선의 진짜 밤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보자. 후회 없는 밤이 될 것이다.


✅ 마무리하며

정선 5일장은 단순히 장이 열리는 장소를 넘어, 수십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로컬의 무대다. 인기 있는 간식과 먹거리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진짜 정선이 살아 숨 쉬는 공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

옹기 그릇에서 삶의 온기를 느끼고, 약초 골목에서 자연의 기운을 담으며, 바느질 가게에서 사람의 손길을 기억하고, 노포 주점에서 정선의 밤을 음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감동 아닐까.

다음에 정선을 찾는다면, 지도 앱이 알려주는 코스가 아니라, 사람의 발길로 닦여진 길을 따라가 보자. 그 길 위에 진짜 정선이 기다리고 있다.